나라의 '달러 비상금'에서 대미투자 몫이 처음 빠져나갔다. 한국은행은 6일 오전 6시 「2026년 9월말 외환보유액」을 내고, 9월 말 외환보유액이 4405억6000만달러로 8월 말(4422억8000만달러)보다 17억2000만달러 줄었다고 밝혔다. 외환보유액(위기 때 곧바로 꺼내 쓸 수 있도록 한은과 정부가 쌓아 둔 외화자산)이 줄어든 것은 넉 달 만이다. 숫자 자체보다 눈여겨볼 대목은 감소 이유다. 한은은 "운용수익에도 불구하고 금융기관의 외화예수금 감소, 한미전략투자공사에 대한 자산위탁 및 기타통화 외화자산의 미 달러 환산액 감소에 주로 기인"했다고 설명했다. 대미 전략투자 재원이 보유액 통계에 처음 잡힌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나

보유액 흐름. 외환보유액은 6월(+3억7000만달러)과 7월(+5억9000만달러)에 이어 8월에 143억3000만달러 늘었다. 1971년 월별 통계를 낸 뒤 가장 큰 증가 폭이었다(연합뉴스·머니투데이). 9월에는 감소로 돌아섰지만 4400억달러대는 지켰다. 한은 자료로 연말 기준 보유액은 2022년 4231억6000만달러, 2023년 4201억5000만달러, 2024년 4156억달러, 2025년 4280억5000만달러였다.

무엇이 줄었나. 자산별로는 국채·회사채 등 유가증권이 3860억3000만달러(전체의 87.6%)로 10억5000만달러 줄었다. 예치금은 299억5000만달러로 3억5000만달러, 특별인출권(SDR, IMF가 회원국에 나눠 주는 국제준비자산)은 154억8000만달러로 2억9000만달러, IMF포지션(IMF에 대한 청구권)은 43억달러로 4000만달러 감소했다. 금은 매입 당시 가격으로 적기 때문에 47억9000만달러 그대로였다(한국은행).

9월 말 외환보유액과 자산별 증감

달러 강세도 한몫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 주는 달러인덱스는 8월 말 99.70에서 9월 말 101.37로 1.7% 올랐다. 같은 기간 달러 대비 유로화는 2.1%, 파운드화는 2.3%, 호주달러화는 2.4% 떨어졌고 엔화만 1.8% 올랐다(머니투데이·한겨레). 유로·파운드로 들고 있는 자산은 그대로여도, 달러로 다시 계산하면 금액이 줄어든다.

대미투자 돈은 이렇게 움직인다.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정부는 10월 1일 대미투자 1호 사업인 미국 텍사스주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에 쓸 첫 투자금 24억달러를 송금했다(연합인포맥스 10월 1일). 이 돈은 한은과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 환율 안정용 정부 기금)이 외화자산을 한미전략투자기금에 맡기고, 기금이 미국 쪽 투자목적법인 계좌로 보내는 방식으로 마련됐다. 미국 측이 투자금 납입을 요청(캐피털 콜)할 때마다 필요한 만큼만 한은·외평기금에 위탁을 요청하는 구조다(파이낸셜뉴스 10월 4일). 엔시날 사업은 총사업비 223억달러, 6472메가와트(MW) 규모이며 2029년 1단계 상업운전, 2032년 전체 가동이 목표다(파이낸셜뉴스 10월 2일). 이 사업이 발표된 과정은 본지 「트럼프가 한국 대미투자로 텍사스 가스발전·원전 8기·알래스카 LNG를 공개했다」(trump-korea-200b-investment-texas-nuclear-alaska-oct-2026-korea)에 정리돼 있다.

다만 한은은 공사에 위탁한 금액, 기간, 약정수익을 공개하지 않았고 "구체적인 향후 추가 위탁금액 및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고만 밝혔다(한국은행·한겨레). 그래서 9월 감소분 17억2000만달러 가운데 얼마가 대미투자 몫인지는 알 수 없다. 국제통화기금(IMF) 기준 외환보유액은 '즉시 쓸 수 있는 돈'만 세기 때문에, 공사에 맡겨 오래 묶이는 자산은 통계에서 빠진다. 과거 한국투자공사(KIC)에 위탁할 때와 같은 처리다(한겨레).

한국에 미치는 영향

① 당장은 '비상금 장부'가 바뀐 것이지, 시장에서 달러를 산 것은 아니다. 정부는 첫 24억달러를 이미 가진 외화자산으로 마련해 국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새로 사지 않았다. 그래서 시장 영향은 거의 없다고 본다(파이낸셜뉴스 10월 4일). 실제로 9월 감소 폭 17억2000만달러는 보유액 전체의 0.4% 정도다(단순 계산). 가계가 이번 발표로 바로 체감할 변화는 크지 않다.

② 문제는 '다음 돈'이 어디서 나오느냐다. 정부는 미국 원전 8기 사업의 장기 기자재(원자로 용기·증기발생기 등) 선급금으로 연말까지 최대 100억달러를 추가로 보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계획대로라면 올해 집행액은 124억달러가 된다. 다만 상업적 합리성 검토와 국회 보고를 거쳐야 한다(파이낸셜뉴스 10월 4일). 대미투자의 연간 송금 한도는 최대 200억달러다. 한은은 지난 7월 국회에 "외화자산의 운용수익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사에 위탁하겠다고 보고했다(연합인포맥스 9월 30일). 운용수익으로 모자라는 돈은 공사 채권으로 채운다. 정부는 내년 한미전략투자채권의 국가보증 한도를 70억달러로 잡았다(파이낸셜뉴스 10월 4일).

③ 환율로 가는 길(추정). 공사가 해외에서 달러 채권을 찍으면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살 일이 줄어든다. 반대로 원화로 돈을 모아 국내에서 달러를 사면 원·달러 환율을 밀어 올릴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 지적이다(파이낸셜뉴스 10월 4일·연합인포맥스 9월 30일). 환율이 오르면 수입 원유·곡물의 원화 가격이 오르고, 몇 주에서 몇 달 뒤 휘발유값·식료품값과 해외여행·유학 송금 비용으로 이어진다. 정부가 "외환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를 원칙으로 내세우는 이유다. 결국 가계에 닿는 경로는 '보유액이 얼마 줄었나'보다 '추가 재원을 어떤 방식으로, 언제 마련하나'에 달려 있다.

④ 완충력에 대한 시선. 보유액은 금융위기 때 외국인 자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갈 때 버팀목이 된다. 매년 일부가 대미투자로 빠져 '쓸 수 없는 돈'이 되면, 해외 투자자와 신용평가사가 한국의 대외 완충력을 따질 때 이 흐름을 지켜볼 가능성이 있다(추정). 한은은 재정경제부와 상의해 8월 말 통계부터 보유액 국가별 순위표를 보도자료에서 뺐고, 이번에도 공개하지 않았다. 금값과 환율에 따라 순위가 흔들려 펀더멘털(기초체력)을 오해하게 할 수 있다는 이유다. 8월 말 기준 한국은 세계 11위였다(머니투데이).

⑤ 금 보유 전략도 바뀐다. 한은은 오는 12월 14일부터 국내에서 생산된 수출용 실물 금 1톤(t) 안팎을 사들이기 시작할 예정이라고 국회에 보고했다(연합뉴스). 한겨레에 따르면 한은은 아직 금을 추가로 사들이지 않았다. 연말 보유액 구성은 대미투자 위탁, 달러 흐름, 금 매입이 함께 결정하게 된다.

대미투자 재원이 외환보유액에서 빠져나가 가계에 닿는 경로

시나리오 (기준·완화·악화)

기준(추정): 미국 측 캐피털 콜에 맞춰 위탁이 나눠 이뤄지고, 원전 선급금은 국회 보고 등 절차를 밟느라 일부만 연내 집행된다. 보유액은 운용수익과 환율에 따라 4400억달러 안팎에서 오르내리고,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직접 사는 일은 거의 없다.

완화(추정): 추가 재원은 운용수익 범위 안에서 마련되거나 공사의 해외 달러채로 조달돼 원·달러 환율에 미치는 직접 영향이 작다. 달러 강세가 누그러지면 기타통화 자산의 환산액도 다시 늘어난다.

악화(추정): 연내 100억달러 집행에 달러 강세와 금융기관 외화예수금 유출이 겹쳐 보유액 감소 폭이 커진다. 부족분을 원화로 조달해 국내에서 달러를 사야 한다는 예상이 퍼지면 실제 매입 전에도 환율 기대가 먼저 움직여 수입물가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아직 가격에 반영되지 않은 리스크

첫째, 위탁 규모가 공개되지 않는다. 한은은 위탁 금액·기간·약정수익을 밝히지 않았다. 매달 보유액 증감만으로는 대미투자 몫과 다른 요인을 가를 수 없어, 시장은 추정에 기댈 수밖에 없다. 둘째, '운용수익 범위'와 '연내 100억달러'의 간극이다. 7월 국회 보고 원칙과 연말 선급금 계획이 어떻게 맞춰지는지는 아직 설명되지 않았다. 셋째, 국가보증 채권은 나라의 잠재 부채다. 내년 보증 한도 70억달러는 외채와 우발채무(나중에 정부가 대신 갚아야 할 수도 있는 빚)로 남는다. 넷째, 순위 비공개는 해석 논란을 줄이는 대신 비교를 어렵게 한다. 이 글이 남기는 숫자는 9월 말 보유액 4405억6000만달러(−17억2000만달러)·8월 +143억3000만달러·유가증권 3860억3000만달러(87.6%)·달러인덱스 +1.7%·첫 송금 24억달러·연내 최대 100억달러 추가 검토·연 송금 한도 200억달러·내년 보증 한도 70억달러·12월 14일 금 매입 개시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