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다시 110달러 문턱까지 올라왔다. 16일(현지시간)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12월물은 전날보다 3.72% 오른 배럴당 109.86달러에 마감했다. 장중에는 110달러를 넘었고, 종가 기준으로 5월 19일 이후 가장 높다. 뉴욕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3.51% 오른 101.41달러였다. 이번 주 상승률은 브렌트유 4.9%, WTI 10.4%다(이데일리). 9월 미군 호위로 회복되던 호르무즈 해협의 원유 수송이 다시 줄고, 그 해협을 피해 가는 우회로마저 공격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었나
호르무즈 공격이 다시 늘었다. 영국 해사무역기구(UKMTO)에 따르면 이달 들어 호르무즈 해협과 페르시아만, 오만만 일대에서 20척 이상의 선박이 공격받았고 대부분이 유조선이었다. 14일에는 싱가포르 선적 컨테이너선 'GFS 프라이드'호가 정체불명의 발사체에 맞아 불이 난 뒤 침몰했다. 선원 21명은 모두 대피했다(파이낸셜뉴스). CNBC는 이란이 지난달 강화된 제재와 미국의 이란 항만 봉쇄에 대응해 공격을 늘리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원유 흐름이 다시 줄었다. 에너지 분석업체 케이플러 집계로 12일까지 일주일간 호르무즈를 지난 원유는 하루 평균 850만배럴로 전쟁 이전보다 약 40% 적었다. 9일 하루 600만배럴이던 통과량이 12일에는 300만배럴로 반토막 나는 등 날마다 크게 출렁였다(파이낸셜뉴스). 14일까지 일주일 기준으로는 하루 940만배럴로 전쟁 이전 평균의 약 70%였다(이데일리). 케이플러는 포괄적인 정치적 합의가 없다면 수송 회복은 "더디고 불규칙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회로도 안전하지 않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6일 홍해 연안 얀부항을 향해 날아온 탄도미사일을 요격했다고 밝혔다. 얀부는 동서 송유관을 통해 호르무즈를 거치지 않고 원유를 내보내는 핵심 항구다. 초기 보고에서 항구 시설 피해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우회 수출로까지 공격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유가를 밀어 올렸다. 여기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을 재개해 랴잔 정유공장의 주요 설비가 멈췄다. 정치 컨설팅업체 유라시아그룹은 중동 분쟁이 더 격화할 가능성을 35%에서 65%로 높였다(이데일리).

비축유로는 시간을 버는 데 그친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이사회는 15일 3월에 결의한 비축유 공동 방출 가운데 지금까지 약 3억3천만배럴이 풀렸고, 남은 약 1억배럴의 방출을 앞당기며 경유 2천만배럴 이상을 가능한 한 빨리 시장에 내놓기로 했다. 다만 로이터는 시장 분석가를 인용해 이 경유 물량이 새 물량이라기보다 기존 약속을 앞당긴 성격이라고 전했다. 미국 에너지부도 전략비축유 최대 1700만배럴을 교환 방식으로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에 미치는 영향
① 물량: 당장은 확보돼 있다. 산업통상부는 13일 "10~11월 원유 도입 물량은 전년 평균 대비 100% 이상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석유화학 원료인 나프타도 10월은 수요 대비 100% 이상, 11월은 100% 수준이다. 업계 일각에서 나온 '11월 위기설'은 일단 가라앉았다.
② 구조: 다만 한국은 이 해협에 묶여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원유의 약 70%를 중동에 의존하고, 그중 90% 이상이 호르무즈를 지난다.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의 우회 송유관 수송 능력은 호르무즈 전체 통과량의 18~28%에 그친다. 나프타는 내수 수요의 45%를 수입하고 그중 54%가 호르무즈를 거친다(데일리안). 얀부가 공격받는다는 것은 이 18~28%짜리 비상구마저 흔들린다는 뜻이다.
③ 가격: 정부의 최고가격제가 충격을 막고 있다. 산업통상부는 16일 17일 0시부터 4주간 적용할 11차 석유 최고가격을 리터당 휘발유 1,784원, 경유 1,773원, 등유 1,380원으로 직전과 같이 동결했다. 15일 기준 두바이유는 배럴당 107.0달러, 브렌트유는 105.9달러로 100달러대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 9월 석유류 물가는 1년 전보다 14.8% 올랐다. 최고가격제가 국제 가격의 상당 부분을 막고 있지만 완전히 막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④ 원가와 수요: 기름값 부담은 이미 소비를 줄이고 있다. 9월 휘발유·경유 합산 주유소 판매량은 1년 전보다 3.7% 줄었고, 최고가격제 시행(3월 둘째 주) 이후 누적으로 경유 판매량은 7.6% 감소했다(산업통상부). 국제 가격이 오르는데 판매 가격을 묶어 두면 그 차이는 정유사 마진이나 재정이 떠안게 된다(추정). 운송비와 석유화학 원료비를 통해 제조업과 서비스 가격으로 시차를 두고 번질 수도 있다(추정).

시나리오
기준(추정): 공격은 간헐적으로 이어지지만 미군 호위가 유지돼 호르무즈 통과량은 전쟁 이전의 60~70% 수준에서 오르내린다. 브렌트유는 100~110달러에 머물고, 정부는 최고가격 동결을 이어 가며 석유류 물가 상승률은 두 자릿수에서 천천히 내려온다.
완화(추정): 미국과 이란 사이에 해상 공격 자제 같은 부분 합의가 나오거나 비축유 방출이 실제 공급으로 이어지면 위험 프리미엄(공급 차질 우려로 붙은 웃돈)이 빠지며 유가가 100달러 아래로 내려온다. 최고가격을 낮출 여지가 생긴다.
악화(추정): 얀부나 동서 송유관 시설이 실제로 피해를 입으면 호르무즈와 우회로가 동시에 막힌다. 이 경우 11월 이후 도입 물량 확보가 다시 불안해지고, 최고가격 동결을 유지하기 위한 부담이 커져 가격 인상이나 추가 재정 지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아직 가격에 반영되지 않은 리스크
첫째, 나프타다. 원유는 비축유가 있지만 국회입법조사처는 나프타 같은 기초 산업원료가 법정 의무비축 대상에서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공급이 끊기면 플라스틱, 포장재, 자동차·전자 소재로 곧바로 번진다. 둘째, 최고가격제의 출구다. 가격을 오래 묶을수록 국제 가격과의 차이가 쌓이고, 언젠가 풀 때 한꺼번에 오를 수 있다(추정). 셋째, 경유다. 유럽 경유 정제마진은 9월 배럴당 95달러까지 올랐다가 16일 78.67달러로 내려왔지만(CNBC),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이 이어지면 다시 오를 수 있다. 넷째, 비축유의 한계다. 한국은 3월 공동 방출에서 2,246만배럴을 할당받았다. 방출이 길어질수록 다음 충격에 쓸 완충이 줄어든다.
이 글이 남기는 숫자는 브렌트유 109.86달러(5월 19일 이후 최고), 이달 상선 피격 20척 이상, 호르무즈 원유 통과량 하루 850만~940만배럴, 한국 원유 중동 의존 약 70%, 우회 송유관 능력 18~28%, 11차 최고가격 휘발유 1,784원·경유 1,773원, 9월 석유류 물가 14.8%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