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있었나

영국 통계청(ONS)은 21일 오전 7시(한국 시간 오후 3시)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1년 전보다 3.5% 올랐다고 발표했다. 8월 3.1%에서 0.4%포인트 뛰었고, 2025년 10월 이후 가장 높다. 로이터가 모은 예상치는 3.4%였고, 영란은행이 7월에 내놓은 전망(3.0%)보다는 0.5%포인트 높다.

상승을 이끈 것은 기름값이다. 9월 평균 휘발유값은 리터당 169.5펜스로 한 달 새 8.2펜스 올랐고, 경유는 10.7펜스 오른 192.5펜스였다. 휘발유는 2022년 8월, 경유는 2022년 7월 이후 가장 비싸다. 자동차 연료 값은 1년 전보다 29.8% 올랐다.

걱정은 기름값이 다른 값으로 번지는지다. 에너지·식품·주류·담배를 뺀 근원 CPI(물가의 기조를 보는 지표)는 2.6%에서 2.8%로, 서비스 물가는 3.4%에서 3.7%로 올랐다. 공장 출고가격(생산자물가)은 4.6% 올라 2023년 4월 이후 가장 많이 뛰었다(로이터).

같은 시각 나온 재정 통계는 물가의 다른 얼굴을 보여 줬다. 9월 공공부문 차입(지출과 수입의 차이)은 245억파운드로 예산책임청(OBR) 전망보다 19억파운드 많았다. 중앙정부가 낸 국채 이자는 109억파운드로 1년 전보다 16.6% 늘어 1997년 집계 이후 9월 기준 가장 많았다. 그중 40억파운드는 물가연동국채(물가가 오르면 원금이 늘어나는 국채)의 원금 증가분이다. 공공부문 순부채는 3조50억파운드로 처음 3조파운드를 넘었고, 국내총생산(GDP)의 94.0%다.

영국 9월 물가와 재정 주요 숫자

한국에 미치는 영향

① 같은 기름값 충격, 다른 전달 속도다. 한국의 9월 소비자물가는 2.9%였고 석유류는 14.8%, 경유는 20.0% 올랐다(국가데이터처). 영국은 연료 상승이 서비스·생산자물가까지 번지기 시작했다. 한국은 정부가 17일부터 4주간 휘발유 리터당 1,784원, 경유 1,773원으로 최고가격을 묶어 소비자 전달을 늦추고 있다(산업통상부). 전달이 늦을 뿐 사라지는 것은 아니어서, 상한을 풀거나 정유사·재정이 떠안는 몫이 한계에 이르면 한국도 영국처럼 몇 달 늦게 근원 물가가 움직일 수 있다(추정).

② 주요국 긴축이 한 방향으로 겹친다. 로이터에 따르면 투자자와 다수 분석가는 영란은행이 11월 5일 기준금리를 3.75%에서 4.0%로 올릴 것으로 본다. 3년여 만의 인상이다. 미국 연준은 9월에 기준금리를 3.75~4.00%로 올렸고(연준 성명), 유럽중앙은행도 6월과 9월에 0.25%포인트씩 올렸다. 라가르드 총재는 17일 에너지 충격이 '못 본 척 넘기기에는 너무 크다'고 했다(유럽중앙은행 IMFC 성명). 유로존 9월 물가도 3.8%다. 영국까지 인상에 나서면 '에너지 충격에도 금리를 올린다'는 흐름이 굳어지고, 한국은행이 국내 물가만 보고 판단할 여지는 좁아진다(추정).

③ 장기금리 경로다. 물가가 오르면 영국 국채 이자가 바로 늘고, 차입이 늘면 국채 발행이 커진다. 존 힐리 재무장관의 첫 예산안이 28일 나온다. 캐피털이코노믹스는 최근 차입이 예상보다 많아 예산안이 신중할 것으로 봤다(로이터). 재정 여력이 빠듯한 나라의 국채 공급이 커지면 선진국 장기금리에 웃돈이 붙고, 이는 한국 국고채 10년물과 고정형 주택담보대출 금리에 시차를 두고 닿는다(추정).

영국 물가·재정 통계가 한국으로 닿는 길

시나리오

기준(추정): 영란은행이 11월 5일 0.25%포인트 올리고 추가 인상은 지표를 보며 판단한다. 영국 물가는 연말까지 3%대 중후반을 오간다. 한국은 석유류 최고가격 유지로 헤드라인 물가가 2%대 후반에 머문다.

완화(추정): 호르무즈 해협 긴장이 풀려 유가가 내려가면 영국 연료값이 먼저 꺾이고, 영란은행은 한 번 올린 뒤 멈춘다. 선진국 장기금리 부담이 줄어 한국 대출금리 상승 압력도 약해진다.

악화(추정): 유가가 더 오르고 영국 서비스 물가가 4%에 다가서면 영란은행이 연속 인상에 나선다. 예산안이 시장 신뢰를 얻지 못하면 영국 국채 금리가 뛰고, 위험 회피 속에 원화 약세와 한국 장기금리 상승이 함께 올 수 있다.

아직 가격에 반영되지 않은 리스크

첫째, 식품 물가다. 영국 식품 물가는 1.3%로 2021년 9월 이후 가장 낮지만, 영국 식음료연맹은 식품 물가 상승이 더 늦게 와서 더 오래 갈 것으로 본다(통계청 인용). 둘째, 9월 물가는 영국 정부가 다음 해 복지급여 인상률을 정할 때 전통적으로 쓰는 숫자다(로이터). 급여가 물가만큼 오르면 재정 부담이 커진다. 셋째, 순부채 3조파운드는 잠정치다. 통계청은 자료가 더 들어오면 고칠 수 있다고 밝혔다. 다음 물가 발표는 11월 18일로, 영란은행 결정 뒤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