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경제를 보는 눈을 크게 바꿨다. IMF는 13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IMF·세계은행 연차총회에서 10월 세계경제전망(WEO)을 내고, 올해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7월의 2.6%에서 3.3%로 0.7%포인트 올렸다. 내년 전망도 2.5%에서 2.8%로 높였다(재정경제부). 지난해 1.1%였던 성장률이 세 배로 뛴다는 전망이다. IMF는 "반도체에 대한 강한 대외 수요가 전쟁의 부정적 영향을 상쇄하면서 한국의 성장세를 뒷받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슨 일이 있었나
세계 전체는 겨우 버티는 그림이다. IMF는 올해 세계 성장률을 3.1%로 7월보다 0.1%포인트 올렸고, 내년은 3.4%로 유지했다. 지난해(3.5%)보다는 느리다. 반면 세계 물가 상승률은 올해 4.7%, 내년 4.1%로 내다봤다. 내년 물가 전망은 7월(3.9%)보다 높아졌다(CNBC). 실바나 텐레이로 IMF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을 "부정적 공급 충격", AI가 이끄는 기술 붐을 "긍정적 수요 충격"이라고 표현했다. 두 힘이 부딪혀 성장은 버티지만 물가는 오른다는 설명이다.
성장은 몇몇 나라로 쏠렸다. IMF는 세계 성장의 95%를 차지하는 나라가 4월 54개국에서 이번에 32개국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대만은 올해 10.7%, 한국은 3.3%로 AI 반도체 수요의 혜택을 받는다. 미국은 올해와 내년 모두 2.3%, 중국은 4.5%와 4.0%, 일본은 0.7%, 유로존은 올해 1.1%다. 중동·중앙아시아는 올해 0.3% 역성장할 것으로 봤다. IMF 보고서는 한국과 대만이 AI 관련 컴퓨터 하드웨어 순무역(수출에서 수입을 뺀 것)의 62%를 차지한다고 분석했다(연합뉴스).
전제가 중요하다. IMF는 호르무즈 해협이 내년 3월에 다시 열리고 내년 10월에야 전쟁 이전 상태로 돌아간다고 가정했다. 7월에는 올해 7월 중순 재개를 가정했으니 정상화 시점이 크게 늦춰진 것이다(CNBC). 유가는 올해 평균 배럴당 96달러, 내년 87달러로 7월(89달러, 78달러)보다 높게 잡았다(CGTN).

한국에 미치는 영향
① 성장의 질: 숫자는 좋지만 한 업종에 기대고 있다. IMF 전망치 3.3%는 정부(3.0%), 한국개발연구원(KDI·3.2%), 아시아개발은행(ADB·3.2%)보다 높고 한국은행(3.3%)과 같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3.7%)보다는 낮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수출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10월 1~10일 수출은 261억달러로 1년 전보다 102.0% 늘었고, 이 가운데 반도체가 122억달러로 170.9% 증가해 전체의 46.7%를 차지했다. 조업일수 차이를 뺀 하루 평균 수출도 28.5% 늘었다. 반도체 가격과 물량이 꺾이면 성장률 전망도 같은 폭으로 흔들릴 수 있는 구조다(추정).
② 물가와 금리: IMF는 통화정책이 물가를 목표로 되돌릴 만큼 "충분히 긴축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세계 물가가 내년에 5%를 넘을 확률을 약 35%로 4월(30%)보다 높였다. 성장률이 높아지고 물가 위험이 커졌다는 진단은 22일 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에 추가 인상 쪽 근거가 될 수 있다(추정).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연 3.00%다.
③ 재정: IMF는 에너지·식품 가격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계 지원은 "일시적이고, 대상을 좁히고, 가격 신호를 왜곡하지 않게" 하라고 권고했다. 한국은 3월부터 석유 최고가격제로 기름값을 묶어 두고 있다. 가격 신호를 누르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IMF 권고와 긴장 관계에 있다(추정). 다만 반도체 호황으로 법인세가 늘면 재정 여력은 다른 나라보다 낫다(추정).
④ 금융시장: IMF는 AI 기대가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고 드러나면 금융시장이 조정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AI 생산성 향상이 나타나지 않는 시나리오에서는 미국 주가가 20% 떨어지고, 2028년 세계 성장이 기준 전망보다 1.1%, 아시아는 1.7% 낮아질 수 있다고 봤다(CNBC). 이틀 뒤인 15일 코스피가 7.57% 급락하며 이 경고가 가상의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 줬다.

시나리오
기준(추정): AI 투자가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지고 호르무즈 통항이 IMF 가정대로 내년 봄 회복된다. 한국 성장률은 3%대 초반을 지키지만, 수출과 내수의 온도 차는 계속된다. 물가는 2%대 후반에서 천천히 내려온다.
완화(추정): 중동 휴전으로 유가가 IMF 가정(96달러)보다 빨리 내려가면 물가 부담이 줄어 한국은행이 인상을 멈출 여지가 생긴다. 반도체 수출 호조와 실질소득 개선이 함께 나타나 내년 전망치가 더 올라갈 수 있다.
악화(추정): AI 투자에 대한 재평가가 본격화해 데이터센터 투자가 줄면 IMF가 경고한 대로 아시아가 가장 크게 다친다. 한국은 반도체 집중도가 높아 성장률 하향 폭이 평균보다 클 수 있다. 같은 시기 호르무즈 정상화가 더 늦어지면 성장 둔화와 높은 물가가 겹친다.
아직 가격에 반영되지 않은 리스크
첫째, IMF 전망의 기준 시점이다. IMF는 이번 전망이 10월 1일까지의 정보를 바탕으로 했다고 밝혔다. 그 뒤 호르무즈 해협 공격이 다시 늘고 브렌트유가 110달러 가까이 오른 것은 반영되지 않았다. 둘째, 성장의 쏠림이다. IMF는 AI 공급망이 소수의 나라·업종·기업에 집중돼 병목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그 소수에 속한다. 셋째, 내년 전망의 차이다. IMF(2.8%)와 한국은행(2.9%)은 정부·KDI(2.2%)보다 0.6~0.7%포인트 높다. 반도체 경기를 얼마나 길게 보느냐의 차이이고, 이 간극이 내년 예산과 세수 전망의 불확실성으로 남는다. 넷째, 국채 금리다. IMF는 선진국 국채 금리가 수십 년 만의 최고 수준이며 AI 투자를 위해 빚을 내는 기술 기업이 그 압력을 더한다고 짚었다.
이 글이 남기는 숫자는 한국 올해 성장률 전망 3.3%(7월 2.6%), 내년 2.8%, 세계 성장 3.1%, 세계 물가 4.7%, 유가 가정 96달러, 호르무즈 재개 가정 내년 3월, 한국·대만의 AI 하드웨어 순무역 비중 62%, 10월 1~10일 반도체 수출 170.9% 증가다.
